ABC뉴스=김호이 기자 /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은 때로 질투가 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집착이 된다.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 노재원이 연기한 박태영은 늘 장태영을 동경하면서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노재원에게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다. 그는 박태영을 단순한 악역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특히 박태영에게 홀덤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홀덤을 공부하고 연습하며 캐릭터에 다가갔다.
또한 장태영 역의 변요한과 촬영 전부터 캐릭터와 장면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완성한 박태영을 떠나보낸 뒤에는 오히려 자신의 일상을 다시 아름답게 바라보려 했다는 노재원. 그가 바라본 박태영과 변요한과의 호흡, 그리고 첫 주연작을 마주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재원[사진=CJ ENM]
Q. 영화를 직접 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루할 틈 없이 원래 찍어놨던 분량보다도 더 깔끔하고 빠르게 잘 나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Q. 첫 상업영화 주연을 맡으셨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너무 감사하고 꿈만 같은 일이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게 당연한 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떠나서, 정말 특별한 일이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Q. 20년간 이어진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담도 컸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타짜’가 워낙 훌륭한 작품이다 보니까 그늘에 가려질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본을 읽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도 단순히 ‘타짜’가 아니라 장태영과 박태영의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이었어요.
박태영이라는 캐릭터에도 굉장히 공감이 갔고요. 흔히 알고 있는 ‘타짜’ 시리즈의 피날레라는 생각보다 저는 언제나 특별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이 이야기가 ‘타짜’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이야기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싶었습니다.
Q. 박태영은 서사가 굉장히 촘촘한 인물입니다. 연기할 때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갔나요?
지금 영화에 나온 것보다 박태영의 서사가 더 많았어요. 박태영이 왜 그렇게 됐는지,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죠. 그런데 영화의 밸런스와 속도감을 위해 잘 편집된 것 같아요.
원래 박태영은 장태영을 닮고 싶어 했어요. 장태영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고, 당구를 치는 자세도 따라 하고, 야구 배트를 잡는 자세도 따라 했죠. 태희에게 구애하는 장면도 원래는 더 많았고요.
장태영이 여자친구가 여러 번 바뀔 때마다 ‘나는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다’는 대사도 있었어요. 태희와 뽀뽀하는 장면도 박태영에게는 첫 뽀뽀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그런 장면들이 다 빠지면서 졸지에 처음 뽀뽀해 보는 배우처럼 보이게 됐지만, 그만큼 입체적인 캐릭터였어요.
Q. 박태영의 열등감과 질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참고한 사람이 있었나요?
누구나 살면서 누군가로 인해 자격지심이 들기도 하고,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정말 둘도 없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저의 분신 같은 친구예요. 지금도 그 친구의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존중하고 존경해요.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닮고 싶고요.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올바르게 좋은 사람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태영을 준비할 때 그 친구와 저의 관계에서 첫 번째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힌트는 변요한 선배님이었어요. 요한 선배님의 모든 걸 담아보고 싶었어요. 의도적으로 옷 스타일이나 브랜드를 몰래 찾아보고 따라 사보기도 했죠. 그런 것들을 따라 해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Q. 박태영에게 홀덤은 단순한 도박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홀덤이 박태영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정말 중요했어요. 박태영의 개인적인 서사만 가져가서는 이 장르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홀덤이 박태영에게 ‘내가 유일하게 증명받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에게 항상 사랑받지 못했고, 학창 시절 카드 게임을 처음 했을 때 누구보다 소질이 있었다는 것이 박태영에게는 첫 번째 행운이었을 것 같아요.
평생 자신이 불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일하게 ‘나를 증명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부분’을 찾은 거죠. 그래서 카드와 카드 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카드 연습도 많이 하고 홀덤도 정말 많이 공부하고 훈련했습니다.
Q. 박태영의 성장 서사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도 성장했다고 느꼈나요?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영화는 절대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를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애써주고 있다는 걸 첫 주연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는 박태영을 통해 배운 건데, 박태영은 자신이 불운하다고 생각하고 ‘내 삶은 왜 이렇게 불행한가’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장태영에게 질투와 자격지심을 느끼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과연 박태영이 정말 불운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장태영이 박태영을 바라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결국 박태영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꼬여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도 ‘내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이것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박태영을 통해 얻은 것 같아요.
캐릭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게 쉽지는 않은데, 연기를 잘했다는 것보다 그런 걸 깨달았다는 게 더 뿌듯했습니다.
Q. 박태영은 단순한 악역이라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좇는 인물로 보입니다. 배우로서는 박태영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요?
당연히 나름의 사정이 있는 인물이라고 접근했습니다. 제가 제 몸으로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건 나쁜 일이다, 좋은 일이다’라고 판단하고 연기하기보다는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박태영은 절대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악하지 않아’라는 생각과 합리화를 계속 가지고 연기했습니다.
Q. 박태영이 장태영을 배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 편집된 장면 중에는 같은 공동 대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장태영을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저를 ‘박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은연중에 직원들이 저를 무시하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드러났죠. 여태까지 내 삶이 불행했고 항상 장태영의 그늘 속에 살았다면, ‘나도 내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배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기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면 관객들에게 설득되지 않더라도 장태영을 먼저 죽이려고 베트남에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장태영을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하다 보니 ‘죽여야겠다’는 생각까지 가게 된 거죠. 혼자 박태영의 전사를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연기했습니다.
Q. 태희를 사랑하면서도 결국 죽이는 선택을 합니다. 그 감정은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트리거가 되는 말은 ‘악마 같은 새끼’라는 대사였어요. 박태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었거든요.
현장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는데 ‘내가 왜 악마 같은 새끼야’라고 직접 내뱉어보기도 했어요. 그 말이 박태영에게는 트리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태영을 처리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인 태희를 그대로 보내면 내 인생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버티고 살아왔는데’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단순히 분노나 광기 때문에 죽였다기보다는, 저는 박태영이 자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Q. 박태영은 광기와 연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그 강약을 어떻게 조절했나요?
처음 가편집본이 4시간이 넘었을 정도로 정말 많은 장면을 찍었어요. 그중에는 더 센 장면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박태영에게 더 연민이 가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감독님도 저를 사회적인 면모로만 그리려고 하신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촬영 때 그런 장면들을 모두 찍었다는 것 자체가 박태영을 바라보는 시점은 감독님과 저에게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다만 영화를 완성하면서 장태영과 박태영의 밸런스를 맞추다 보니 많은 장면이 편집된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 감사한 건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그냥 내버려두셨어요.
Q. 현장에서 직접 제안한 애드리브도 있었나요?
정말 많아요. 장태영이 마지막에 카드를 칠 때 저에게 ‘진짜 운 좋은 새끼는 너이지 않았을까’라고 했을 때 장태영이 ‘너를 믿어주는 누구도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네가 뭘 알아’라는 말을 저도 모르게 확 내뱉었어요.
일본어 애드리브도 있었습니다. 가네코에게 ‘센타쿠데스’라고 말하는 장면도 애드리브였어요.
일본어로 애드리브를 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일본어가 제 언어도 아니고 대본에 있는 일본어가 조금 딱딱하게 느껴져서, 조금 더 실제 내가 할 수 있는 일본어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아야카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러 애드리브를 함께 연습했고, 실제 촬영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애드리브도 있었습니다. 물론 감독님과도 모두 이야기를 나눴고요.
Q. 변요한 배우가 연기한 장태영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정말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요한 선배님이 장태영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사람이 없으면 저는 삶의 동력을 잃거든요. 카메라 앞에서 너무 믿어지는 장태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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